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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씨. 젠장…” 

타이치는 오늘 중 그 어느 때보다 퉁명스럽게 입밖으로 말을 내뱉었다. 일부러 발을 질질 끌며 작은 돌부리를 걷어찬다. 든 것이라곤 자전거 자물쇠의 열쇠가 전부인 가방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끌렸다. 

 

“누군 좋아서 이러고 있는 줄 아시나요? 먼지 날리게, 발 좀 들고 걸으세요.“ 

 

미오가 옆에서 불만스레 말하곤 제 치마를 탁탁 털었다. 그러곤 익숙하게 다시 발을 모아 자세를 고쳤다. 타이치는 그런 미오를 곁눈질로 쳐다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싫으면 그냥 내빼면 되잖아?“

”학생 신분으로 구태여 선생님에게 대들 필요는 없는 법이랍니다. 천박한 서민은 오히려 귀찮은 쪽을 택하곤 하나 보죠?“ 

”이게, 아까부터 계속 쫑알쫑알…!“ 

금방이라도 한 대는 칠 것 처럼 손을 치켜든다. 미오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흥 하며 고개를 돌렸다. 타이치도 쳇, 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몇 시간 전의 일. 타이치의 반에 전학생이 하나 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런 시골 깡촌에 전학을? 별일이라고 생각하던 찰나까지도 이런 귀찮은 일에 휘말릴 줄은 몰랐다. 또각또각 올곧은 소리를 내며 교실로 들어오는 전학생에게서는 부드러운 향기가 났다. 그 향기에 코끝이 간지러워 재채기를 한 번 했다. 손을 바로 모은 채 허리를 꼿꼿이 펴고, 어디에서 난 줄도 모를 광 나는 가방을 공손히 들고 있는 전학생을 본 타이치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아마 언니를 따라 시내에 몇 번 나갔을 때 본 그런 높으신 분이겠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깔보는,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 

‘재수 없어…’

창문 밖으로 고개를 휙 돌리고선 나지막히 한숨을 내쉰다. 평소처럼 딴청을 피우며 수업 시간을 보내다가, 종례 시간이 다가왔을 무렵 담임 선생님이 타이치를 불렀다. 

“…제가요?”

“그래. 미오는 아직 이 주변을 잘 모르니까, 길 잃지 않게 방과 후에 마을 소개 좀 시켜주는 건 어떠니?”

“싫은데요, 저 말고도 빠삭한 애들도 많은데.”

”그러지 말고. …그래. 소개 잘 시켜주면, 이번에 부모님 불러오라고 했던 일은 눈감아주마. 어때?”

“……“

 

 

”아, 진짜 열 뻗치네! 야, 빨리 안 오고 뭐 해?“

”여기서 어떻게 뛰라는 거예요?! 흙먼지 투성이에, 보도블럭도… 꺄악!“ 

타이치는 냅다 미오의 손목을 붙잡고 교문까지 뛰기 시작했다. 그냥 한 번 맞고 끝나면 되는 걸, 굳이 일을 키워가지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미오는 안중에도 없었던 사이 교문에 다다랐다. 

”허억, 허억… 처, 천박 서민 주제에! 이게 무슨…“

“빨리 타.“

미오가 숨을 고를 새도 없이, 타이치는 익숙하게 자물쇠를 풀고 자전거에 올라타고서 뒷자리를 손으로 탕탕 치며 재촉했다. 미오는 자전거를 눈으로 한 번 훑더니, 질색하며 입을 열었다.

“저더러 지금 이런 흙먼지투성이 고물에 올라타라는 건가요?”

“맞을래?”

 

몇 분간의 유치한 말싸움 끝에, 결국 타이치의 겉옷을 깔고 그 위에 앉기로 결론이 났다. 이마저도 미오는 땀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며 싫어했지만. 타이치는 학교를 나와서인지 자전거를 타서인지 묘하게 기분이 풀린 표정으로 페달을 밟았다. 

 

초여름답지 않은 서늘한 바람이 둘의 머리카락을 차례로 스쳤다. 기름을 친 지 오래되어 묘하게 삐걱거리는 자전거와, 포장되지 않은 흙길을 지나는 바퀴의 소리만이 적막을 채웠다. 타이치는 문득,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짧게 이 주변만 도는 척하고 내려줄까? 그랬다간 들키려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콧노래를 부르던 와중에, 

 

덜컹. 

 

자전거가 길에 박혀 있던 돌부리에 걸려 크게 들썩였다. 미오는 “앗!” 하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타이치는 이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푸훗.“

”… 왜 웃으시나요? 자전거가 넘어질 뻔 했다구요!“

”쳇. 내 애마는 이런 걸로 안 넘어져, 아가씨.“

”뭐죠, 그 말투는? 애마는 무슨… 그냥 고물이에요, 이건.“

”이게 진짜…“

 

타이치는 이 순간 결심했다. 좋아, 아주 멀리멀리 보내주마. 저쪽 시냇물부터 산 너머까지, 해가 질 때까지 달려서 실컷 놀려 줘야지.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재미있는지, 타이치는 의아한 미오를 힐끗 쳐다보곤 입꼬리를 한껏 올리고서 페달을 더 세게 밟기 시작했다. 남실바람이 나뭇잎을 타고 얼굴에 일었다. 초여름이었다.